(500)일의 썸머(500 Days of Summer, 2009)


STAFF 감독, 각본ㆍ마크 웹 | 제작ㆍ메이슨 노빅 | 촬영ㆍ에릭 스틸버그
CAST 톰ㆍ조셉 고든-레빗 | 썸머ㆍ주이 디샤넬
DETAIL 러닝타임ㆍ95분 | 관람등급ㆍ15세 이상 관람가 | 홈페이지ㆍwww.foxkorea.co.kr/500days


같은 영화를 세 번씩이나 본다는 것은 웬만해선 쉬운 일도 아니고, 자주 있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 영화는 개봉하자마자 한 번을 보고, 여운이 남아서 또 다시 보고, 결국 대부분의 상영관에서 내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보게 되었다. 이상한 일이다. 여자친구가 있을 때에는 자주 보지 않게 되던 것이 로맨스 영화인데, 혼자가 되었을 때 가장 보기 편하고, 가장 재미있는 영화가 로맨스 영화라니.

영화의 초입 때 나온 나레이션처럼, 이 영화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그저 그런 러브스토리는 아니었다-나레이션에서는 This is a story of boy meets girl. But you should know up front, this is not a love story.라고 친절히 말해준다- 과연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운명'? 톰은 그렇게 믿었고,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한 여자, 썸머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한 여자를 만나는 동안의 일들이 이 영화의 전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

세상 모든 사랑 이야기가 항상 행복할 수는 없는 법. 이 영화는 그 행복한 순간과 불행한 순간을 마치 과거를 회상하듯이 보여준다, 그 일이 먼저 있었고 나중에 있었고는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구성이 이 영화의 장점이자, 내가 가장 끌렸던 부분이다. 게다가 연애에 대한 조언은 자신보다 한참 어린 여동생에게서 듣는 오빠라니, 참 설정도 절묘하다. 연애에 소극적인 오빠와 적극적인 동생, 어쩌면 이 영화만의 모습은 아닐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또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두 남녀의 모습을 화면을 분할하여 같이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연애를 하면서 참 많은 것을 상상하지만, 가장 상상하기 어려웠던 장면이라면, '내가 이 상황에서 이러고 있는데, 과연 이 사람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였다. 이 장면이 모든 연애의 해답은 아니겠지만, 왠지 애틋해지는 마음에 더 마음에 들어했을 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대부분의 상영관에서 일찍 내려버린 상황이 많이 아쉬웠다. 샘 레이미 감독과 토비 맥과이어를 대신해, 차기 <스파이더맨> 작품의 주인공과 감독으로 굳어가는 마크 웹 감독과 조셉 고든-레빗이 처음 만들어낸 장편 영화라는 사실로 이 영화를 조금 더 주목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면, 뮤직비디오를 만들던 감독이 작품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연출력은 영화 <디스트릭트 9>의 닐 블롬캠프 감독과 함께 차기작을 기대하게 만들어주었다.

디스트릭트 9 (District 9, 2009)

STAFF 감독, 각본ㆍ닐 블롬캠프 | 제작ㆍ피터 잭슨 | 촬영ㆍ트렌트 오팔로치
CAST 비커스ㆍ샬토 코플리 | 쿠버스ㆍ데이비드 제임스 | 타냐ㆍ바네사 헤이우드
DETAIL 러닝타임ㆍ112분 | 관람등급ㆍ청소년 관람불가 | 홈페이지ㆍwww.d-9.com
 


# 요하네스버그 상공에 거대한 우주선이 멈춘지 20년. 그 20년동안 제한 구역인 '디스트릭트 9'에 거주-거의 강제수용과 비슷한 수준이었다-하는 외계인들이 방화나 절도, 살인 등의 심각한 범죄를 일으키자, 정부에서는 MNU 다국적연합을 주축으로 150만의 외계인들을 강제 이주하는 작전을 실시하게 된다.

# 대표작이라고 할 작품도 전무한, 우리 나라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79년생 닐 블롬캠프 감독과 <반지의 제왕>과 <킹콩>으로 알려진 피터 잭슨의 만남이, 이런 식으로 충격적이고 입이 떡 벌어지게 하는 영화를 만들어낼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을 가볍게 비웃기라도 하는 것만 같았다. 영화를 너무 기대하고 보는 것도 후폭풍이 센 편인데,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봤던 나는 뒷통수를 제대로 맞은 것만 같다. 이 영화가 픽션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첫 장면을 맞닥드렸다면 아마 하나의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착각했을 지도 모를 정도로 치밀했다.

# 과 선배 중 한 분의 평을 빌려오자면 'FPS 어지러워서 못하는 사람들은 주의'. 무비위크의 모 기자의 리뷰에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외계인들'이라는 말이 붙어 있는데, 영화를 보고 나오니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영화 <클로버필드>처럼 사건 현장을 카메라로 직접 담는 느낌이라 약간의 어지러움이 느껴지기도 했고, 비커스 요원이 주는 사탕을 집어던지는 외계인 아기는 정말 인간의 아기처럼 느껴졌다.

# 얼마 전에 상영했던 <9:나인>의 쉐인 액커 감독과 함께 2009년 새로운 거물이 등장했다고 말하고 싶어졌다. 그동안 신인급 감독과 거물급 제작자의 만남은 수도 없이 많이 있었지만, 그 결과가 이렇게 웅장한 경우는 참 드물었다. 이 한 작품만으로도 충분히 앞으로 닐 블롬캠프 감독의 작품을 주목하게 될 것 같다.

보름동안 살아온 이야기 (via. me2day)

이 글은 sy님의 2009년 8월 11일에서 2009년 8월 26일까지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그래, 이건 결혼식이잖아 - <사일런트 웨딩(NUNTA MUTA, 2008)> 맥스무비 시사회 후기

STAFF 각본, 감독ㆍ호라티우 말라엘 | 제작ㆍ알리나 데이비드 | 촬영ㆍ비비 드래건 바질
CAST 이안쿠ㆍ메다 안드레아 빅토르 | 마라ㆍ알렉산드루 포토신
DETAIL 러닝타임ㆍ87분 | 관람등급ㆍ15세 관람가

시사회 2009년 8월 20일 월요일, 명동 중앙시네마 1관 

 

# 그래, 일생에 단 한 번밖에 없을 결혼식인데, 이건 해도 너무했다. 하필이면 소련의 최고 권력자인 스탈린의 죽음이 '이안쿠'와 '마라'의 결혼식과 같은 날에 생겨난건가. 스탈린의 죽음으로 소련군이 강제로 정해놓은 1주일의 애도기간동안 모든 집회도, 웃음도, 심지어 장례식마저 안되는, 터무니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결혼식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루마니아에서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라고는 하지만, 운명의 장난은 너무 도가 지나쳤다.

 

# 사실, 영화의 시놉시스와는 다르게, 첫 시작부터 '이안쿠'와 '마라'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건 아니다. 조금은 섬뜩하기까지 한 도입 부분은, 과연 이 영화가 맞는가 싶을 정도로 이질감이 느껴졌다. 검은색, 짙은 회색으로 가득한 도입과 마지막 부분은, 공산주의의 몰락 이후 황폐화된 루마니아의 모습을 너무나도 절실하게 담고 있었다. 혹시라도, 이 영화를 보러 들어갔다가 도입 부분에 놀라서 그냥 나가는 관객이 있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어, 놀라지 말라는 뜻에서 미리 얘기해주었다.

 

# 이 영화의 장르를 어떻게 분류하고 있을까 궁금해서, 각종 영화 관련 사이트들을 검색해보았는데, 하나같이 '드라마'라고 표기를 해놨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는 영화 사이트 관계자가 있다면, '코메디'이라고 같이 표기해줬으면 좋겠다. 그만큼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장면들이 많이 있었다. 그 중 압권은,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떠오르게 만드는, 공산주의 선전용 영화 상영 장면이었다. 덜 떨어진 듯한 공산당원 4인방은 슬랩스틱을 펼치며 모두를 웃기고 있고, 그동안 1930년대의 흑백 영화들처럼 무채색 화면에 후시 녹음을 통해 덧입힌 사람들의 웃음 소리가 가득하다. 어쩌면 찰리 채플린이 그랬듯 감독도, 지나간 공산주의와 파시즘에 대해 조롱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 어쩌면 이 영화는, 단순히 스탈린식 공산주의가 펼쳤던 잔혹함만을 이야기하려고 하지는 않는 것 같다. 공산주의 몰락 이후 급격하게 유입된 자본주의적 사회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등장인물의 대사가 있었다. 완벽하게 기억하지는 않지만 아마, '공산주의 시절에는 공산주의자들이 이 마을에 공장을 세우겠다고 다 엎어 놓더니, 공산주의가 망하고 나서는 자본주의자들이 이 마을에 공장을 세우겠다고 다 엎어 놓았다'라는 내용의, 약간 분노에 휩싸인 어투의 대사였다.

 

# 참으로 오랜만에 맥스무비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관람하고 왔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맥스무비 시사회에 마지막으로 당첨되어 관람한 게 노영석 감독님의 <낮술>이라는 영화였으니, 벌써 7개월 전의 일이다. 글을 꼼꼼하게 작성하지 못하는 내 탓이었을까, 아니면 순전히 내가 투자한(?) 강냉이가 다른 사람들보다 적어서였을까, 순전히 내 운이 다 한 것일까, 이상하게 올해는 맥스무비 시사회와는 인연이 없었다. 이 영화 이후로 조금 맥스무비와 가까워질 수 있을까.

안녕, 필름2.0


벌써 영화 전문 잡지인 <필름2.0>이 발행 중지된 지 7개월이 지났다. 매주 1,000원짜리 한 장으로 나의 영화 지식과 감성을 간지럽히던 잡지를 보지 못한 것도 그만큼 지났다. 대신 간간히 2,000원짜리 <무비위크>나 3,000원짜리 <씨네21>을 통해 영화 이야기들을 접하지만, 두 잡지 모두 <필름2.0>만큼 나를 간지럽게 해주지 못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매주 <필름2.0> 홈페이지에 접속해보지만 역시 돌아오는 것은 서버를 찾을 수 없다는 응답뿐이다. 아무리 내가 소리를 쳐도 그 소리는 어디론가 흡수되어 메아리로 돌아오지 않는다.

1,000원에서 2,000원이나 3,000원으로 올라도 좋으니 <필름2.0>이 어서 정상화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나만 한 것이 아니었고, 게시판에 올라오는 스팸 및 홍보글들에 눈을 찌푸리는 일도 나만 한 것이 아니었고, 이런 지경까지 오는동안 그 이면의 모습들에 관심을 가지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일도 나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필름2.0>은 돌아오지 못했다.

<필름2.0>의 발행 중단 3개월 후, 영화 잡지인 <프리미어>도 갑작스럽게 발행 중단 선언을 해버렸다. <필름2.0>처럼 생산이 어려워져서 중단을 한 게 아니라 아쉬움보다는 약간의 분노감이 들었다.

이제 영화와 관련된 잡지라고는 주간지인 <씨네21>, <무비위크>, 그리고 월간지인 <스크린>, 이렇게 3가지 뿐이다. 3천원, 2천원, 6천원이라는 가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필름2.0>과는 다른 길을 걸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씨네21>의 경우 올 초부터 인쇄 사이즈를 축소하였고, <무비위크>는 한껏 더 엔터테인먼트 요소들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남아있는 것들을 지켜내자니 자꾸만 손이 가지 않고, 옛것을 그리워하자니 그들은 너무 먼길을 가버려 돌아오지 않는다. 안녕, <필름2.0>. 당신이 가버린만큼, 언젠가는 당신의 자리를 채울 다른 영화 잡지가 생겨날 거라고 믿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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