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술~영화 <낮술> 시사회 후기

남자에게 있어서 술은 참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주고, 많은 것을 의미한다. 친구와 크고 작은 다툼 이후에도 술자리 이후에 보통은 다 잊을 바탕을 만들어주기도, 헤어진 여자가 그리워질 때면 취했다는 핑계로 한번씩 전화를 걸어볼 용기ㅡ혹은 객기ㅡ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아, 물론 연말 혹은 연초에 술독, 아니 술우물에 빠져 '난 술 끊겠어.'라고 말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리고 회식이라는 이름으로, 접대라는 이름으로 시도때도 없이 술과 함께 살아야 하는 직장인들에게 미안한 말이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지만 술자리도, 술도 모두 좋아하는 편이다. 나에게 술에 관한 기억 중 가장 창피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술에 한 번 진탕 취해버려 도저히 버스를 타고 집에 갈 상황이 되지 못해 신도림역에서부터 집ㅡ부천에 있다ㅡ까지 추운 겨울밤에 걸어왔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휴학 직전 학기의 기말 고사 기간에 선배들, 그리고 친구들과 지하철이 끊기기 직전까지 마셨다가 결국 내 '필름'이 끊겨서 서울대입구까지 지하철로 반바퀴를 돈 후 동이 틀 무렵 집에 도착하는 바람에 시험 공부도 제대로 못해서 그 과목 학점에 F가 박힌 것이다. 아마 그 이후로 점점 술과는 거리를 1mm씩 두고 살게 된 것 같다.

물론 술에 관한 즐거운 기억도 있다. 한참 철없이 다니던 대학교 새내기 시절, 마음이 맞아 항상 같이 다니던 절친한 친구 둘과 아침 10시 반에 학교 노천극장 무대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며 빈 시간을 즐겼던 것이다. 그게 뭐 즐거운 기억이냐고 묻겠지만, 그런 일탈, 그런 즐거움이 없었다면 아마 난 삭막하게 강의실에 앉아 졸고 있는 한 마리 닭둘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여기 술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또다른 한 남자가 있다. 그 남자ㅡ혁진ㅡ는 거절을 잘 하지 못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친구들이 가자는 여행이 내키지 않으면서도 거절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가고, 남이 따라주는 술을 거절하지 못해 결국 속을 버리고 후회를 한다. 그러면서도 나쁜 소리는 기어가는 소리로 하고는 넘겨버리고 만다.

그는 귀가 참 얇다. 남들이 하는ㅡ사실 그에게 한 말은 '내뱉었다'라고 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ㅡ'멋있다'라는 한 단어에 금방 넘어가기도 하고, 그를 위해서, '정선에서 팬션을 하는 선배가 고기도 구워주고, 후회하지 않을거다, 아마 가보면 네가 먼저 뻑 갈거다'라고 이야기하는 친구에게 낚여서 돌아가려던 마음도 금방 접어버리고 만다.

게다가 그는 참으로 우울한 청춘이다. 자신의 동생과 이름이 같아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여자친구에게 이별 통보를 받았지만, 차마 그 말을 믿을 수 없어 휴대전화 배경 화면으로 해놓은 여자친구의 사진을 수도없이 들여다보고 앉아있다. 게다가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딱히 내세울만한 일하고 있지도 않다ㅡ아버지 회사의 일을 도와드리는 것을 사회에서는 뭔가 하고 있다고 인식할까,라는 생각에 이렇게 적었으니, 그에 대해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다가 그는 정선버스터미널에 혼자 남게 된다. 그놈의 술이 웬수였다. 전날 밤, 그를 위로해주겠다고 모인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친구들은 이 참에 여행이라도 같이 가자고 하고, '정선'이라는 장소와 그 곳에 친구ㅡ이름이 '기상'이다ㅡ의 선배가 팬션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어 결국 즉흥적으로 결정해버리고 만다. 이 핑계 저 핑계 모두 이야기하다가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결국 그 여행에 함께 하기로 했던 것이다. 친구들은 술자리에서 했던 이야기들을 새카맣게 잊어버리고는 그가 정선에서 다시 서울로 돌아가려고 결심할 때까지 연락조차 없다.

친구가 던져준 팬션 연락처만 가지고 그는 정선버스터미널에서부터 팬션까지 하염없이 걷고 또 걷는다. 지칠 때까지 걷는다. 힘들게 걸어서 찾아간 팬션의 주인은 정말 불친절하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냐며 혼자 짜증을 억누르며 방에 짐을 풀고 담배를 하나 피우러 나오니 왠 예쁜 여자가 걸어 올라와선 옆방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그 여자는 그에게 담배를 빌려간다. 혼자 왔다는 말을 남기고. 

그와 그의 여행에 무언가 따뜻한 기류가 흐를 법하면 왠지 그 기류는 먼 곳으로 흘러가버리고 만다. 혼자 왔다는 여자를 찾아 옆방 문을 두드렸더니 그 방에 왠 남자가 있질 않나, 서울로 돌아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다 만난 옆방 여자와 정류장에 앉아 술을 마시고 같이 경포대에 가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또 그 남자가 옆방 여자를 태우고 가버리질 않나. 생각없이 찾아간 '낯선 곳'에서 '낯선 이성'과 '원나잇 스탠드'를 즐기고 싶어하는 게, 남자가 대놓고 가지고 있는 욕심이지만, 그에게 그런 환상은 철저하게 깨지고 만다. 운도 참 지랄맞다.

영화 내용에 대해서는 그만 이야기하자. 아직 개봉도 하지 않은 영화의 내용에 대해 더 떠들어봤자 내 입만 아프지, 남들은 스포일러 뿌려대지 말라고 항의하니 말이다. 게다가 술에 관한 이야기라고 떠들어대면서 정작 그 남자, 혁진이 왜 술과 관련되었는지 제대로 설명해내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결국 그건 스포일러이기 때문이다. (웃음) 하지만 영화에 대한 몇 가지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거리들이 있다. 

첫번째,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아마 '느닷없는 여행'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미 여러 TV 프로그램들에서 정선의 아름다움을 선보였지만, 딱 지금 즈음의 정선을 참으로 잘 담아냈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영화를 보는 내내, 몸과 손이 간지러워 죽는 줄 알았다. 이 영화를 보고도 당신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아마 게으름과 직장 생활 때문에 그러거나, 아니면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웃음)

두번째, 영화 정보를 보면 알겠지만, '노영석'이라는 이름이 꽤나 많이 들어간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동안 참으로 많은 '노영석'이 지나갔다. 연출, 각본, 제작, 촬영, 음악, 미술, 편집에는 그 이름이 들어가있다. 물론 영화를 다 혼자 만든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밴드에서 모든 악기를 혼자 다루는 것만큼의 미친 짓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의 그런 노력과 실력 때문에 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그리고 지난 번의 시사회에서 그렇게 호평을 했던 것이겠지.

영화와는 관련없는 말이지만, 엔딩 크레딧에서 '양미숙'이라는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혹시 떠오르는 게 있는가 모르겠다. 이경미 감독에게 상을 안겨주었던 영화 <미쓰 홍당무>의 주인공 이름이 '양미숙'이다. 삽질이 전문이었던 영화 속의 그와는 다르게, 엔딩 크레딧의 그는 좋은 영화를 제작하는 데 몫을 해주었다.

세번째, 아마 술이 땡기거나 술과는 멀어지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것은 보는 사람의 자유! 나는 이틀 간 홀로 쓸쓸한 캔맥주 타임을 가진터라, 금요일 밤은 아마 주변의 친한 사람과 술을 마시자고 할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재미있었다. 그리고 재미있었고, 재미있었다. 참으로 우여곡절과 반전이 많은 이 영화를 꼭 다른 사람이 봤으면 좋겠다. 또한 이런 영화들이 많이 나오고, 상영 스크린 점유율을 높였으면 좋겠다. 그러면 아마 지금 영화를 보는 것보다 더 많이 영화를 보러 싸돌아다니지 않을까 (웃음) 내 이기적이고 주관적이고 신뢰도 제로에 가까운 평점을 주자면, 5점 만점에서 4.6점. 내 손이 두 개이기 때문에 "Two Thumbs Up!"이지만, 아마 나에게 손이 더 있었다면 더 많은 "Thumb"을 올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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