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 연차, 090122

하나의 글에 여러 가지의 생각과 일들을 적으려니, 과연 이 글은 어느 범주에 넣어야 하는 건지 고민만 하게 된다. 이러다가 나는 고민만 하다가 죽게 되는 영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결국 범주가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 '감상'이라는 범주에 집어넣기는 하겠지만, 왠지 범주라는 걸 꼭 하나만 정해야 한다는 건 참으로 나쁜 짓인 것 같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쉬고 싶은 마음도 없었는데, 그동안 하루치 식대와 교통비가 깎이는 게 싫어서 쓰지 않았는데, 그냥 무작정 연차를 내버렸다. 연차를 내고 나서, 과연 내일은 무얼 할까,에 대해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하루동안 훌쩍 어디론가 떠나버릴까 생각도 했고,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얼굴들을 잠깐씩만이라도 만나볼까 생각도 했고, 그냥 집에 쳐박혀 하루 종일 아무런 빛도 보지 않고 폐인처럼 컴퓨터만 하고 있을까 생각도 했지만, 아무래도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건, 그리고 나에게 가장 자신있는 건 아무래도 아무 곳이나 혼자서 빨빨거리며 싸돌아다니는 것이었다.

 

 

#1. 조조영화

아침에 눈을 떠서 샤워를 하고 면도를 하고 옷을 입고선, 지금 일하고 있는 영화관으로 오랜만에, 참 오랜만에 조조영화를 보러 갔다. 평일 하루 스코어가 고작 1000명도 채 되지 않는, 아주 작은 동네 영화관에서 1년동안 일하면서 여유롭게 조조영화를 보는 것도 참 오랜만인 듯 했다.

 

 

#2. <작전명 발키리(OPERATION WALKÜRE, 2009)>

그러고 보니, 영화관 일을 하기 전부터 개봉 영화를 조조로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아마 영화를 '개봉일'에 '조조' 시간대에 본 것은 이번이 처음.

어차피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만든 영화라 결말은 뻔하지만, 그 사이에 끼어있는 긴장감을 느껴보고 싶어서 같은 날 개봉한 <적벽대전2: 최후의 전쟁> 대신 이 영화를 택했다ㅡ사실 시리즈물이라는 이유로, <적벽대전2: 최후의 전쟁>의 전편을 보지 않았다는 이유였긴 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왠지 '미국인이 독일인에게 애국심을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왠지 이 영화가 나중에 케이블TV의 영화 채널에서 미국의 독립기념일이나 우리 나라의 현충일 혹은 광복절에 방영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글을 쓸 여유가 된다면 아마 이 영화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리뷰를 해보겠다. 내가 주는 평점은 5점 만점에 3.9점 정도.

 

 

 

 

#3. 헌혈

스물네살이 된 나는 어느덧 스물하고도 네번째의 헌혈을 했다. 가족들은 이제 충분히 했으니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고 하지만, 언론에서는 대한적십자사의 방만한 운영에 대해 떠들고 있기는 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차치해두고, 내가 좋아서, 정말 보람을 느끼기 때문에 하는 것이고, 자꾸 헌혈에 대해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게 정말 싫다. 나는 내 건강함을 통해, 내가 볼 수 없는 다른 사람들에게 내 나름대로의 사랑을 표현하고 싶을 뿐이다.

 

 

 

#4. 혼자 영화보기

영화관에서 혼자 보는 영화가 좋아진 이유는, 같이 간 사람이 영화를 보는동안 어떤 반응을 보일까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그리고 최근에 luna.님과 대화를 나누고나서 영화를 보고 나와서의 그 느낌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건 혼자 영화보기의 가장 좋지 않은 점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by sy | 2008/11/07 01:02

영화관 아르바이트 생활이 1년쯤(그 기간이 계속 이어진 것은 아니고, 작년 초부터 시작하였다가 중간에 약 6개월 간의 공백기가 있었다.) 되...

 

 

#5. <타인의 취향>

2001년에 우리 나라에서 개봉한 적이 있는 프랑스 영화 <타인의 취향>. 이화여대 ECC에 있는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이 영화를 다시 상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갔다. 사실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이화여대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조금 여유가 생겨 평소에는 잘 타지도 않던 버스를 타고 갔다가, 버스 노선이 구로에서 목동 주변을 돌아서 신촌, 이화여대 쪽을 가는 것을 모르고 무작정 탄 것이라, 지하철을 타고 가면 20분이면 족할 거리를 무려 한 시간이나 걸려서 갔던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내 지나간 연애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본다. 그러나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아마 연애에 대한 기억이 참으로 나를 닮아 무채색이었나보다.

혹시라도 내가 앞으로 누군가와 연애를 하게 된다면 과연 나는 어떤 식의 연애를 하게 될까. 물론 그건 어떤 사람과 함께 하느냐에 달린 문제이긴 하겠지만, 중요한 건 과연 나는 그 사람의 취향을 얼마나 존중해줄 수 있을지, 그리고 그 사람은 나의 취향을 얼마나 존중해줄 수 있을지. 왠지 카스텔라와 마니 사이의 갈등을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중년이 넘은 사람들이 아직도 사랑에 철이 들지 않아서 벌이는 알콩달콩하고 귀여운 사랑 혹은 불륜 이야기. 혼자만의 평가로는 5점 만점에 4.1점.